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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麗君 " Goodbye My Love” ”내일이 있으니까 ” 와 함께 자주 듣고 있던 노래는 ” Goodbye My Love”. 원곡은 안 루이스 씨의 것 (↑ 1974년)이지만, 테레사 텐 (鄧麗君) 씨의 커버 쪽이 나에게는 호감이 간다. (중국어는 잘 모르지만 가사는 많이 바꾸고 있는 것 같다) 홍콩영화 "첨밀밀 (甜蜜蜜)" (감독 Peter Chan, 1996년) 의 애틋한 이별의 장면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 온 것이었다. 그때, 이전에 들었던 이 노래를 재발견한 것이었다. 다시 그것을 듣고 있는 나에게도 2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여기에는 쓰지 않지만 영화의 개봉 전년에 돌아가신 테레사 텐씨에게의 오마주(hommage) 작품과 같은 데도 있어, 영화 속에서 그녀의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원곡.. 더보기
사카모토 큐 "내일이 있으니까" 블로그 기사를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 마지막 기사를 쓴지 4개월이 지났다. 마지막의 기사를 쓴 무렵부터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나기 시작해 근처의 A정형외과 의원에 갔는데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의사는 “특히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왔잖아! 3월에 들어가, 왼쪽 무릎도 아파져서 또 의원에 가니 이번은 진찰도 하지 않은 채, 습포약을 낼 뿐... 그래서 3월 중반에 다른 B병원에서 진찰을 받기로 했다. 초진으로 진통제을 받았지만, 4월에 들어서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자고 있어도 통증으로 몇 번이나 잠이 깼다). 다음의 진찰날에 그것을 전하면 “진통제를 추가합니다”… 진통제를 지나치게 복용하면 위까지 나빠지지 않을까? 이런 의사는 신용할 수 없다. 주치의 (내과)에게.. 더보기
아사카와 마키 (3) "외로움에는 이름이 없다" 고베 대진재(大震災)이 일어난 1995년 ”1월17일”로부터 15년후의 같은 날 (2010년1월 17일), 가수 아사카와 마키 (淺川マキ)씨가 공연지 나고야(名古屋)에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67세였다. 그 때부터 벌써 13년에 된다. 그녀 같은 가수는 지금 상업주의가 만연하는 일본의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 ? 그녀의 기일(忌日)이 아니라도 조용한 밤에는 마키씨 소리를 까닭없이 듣고 싶어진다. 전에 소개한 곡(“날이 새면”, “거리의 술집에서”)도 좋아하는데, "외로움에는 이름이 없다”라는 곡은 특히 마음에 깊게 스며들어 온다. 1977년에 쿄토대학 서부강당(京大西部講堂)에서 행해진 라이브 녹음 앨범 ”夜 (밤)”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당시 교토대학 서부구내 (西部構内 ↓ )에는 낡은 강당을 중심으로 .. 더보기
아사카와 마키 (2) "거리의 술집에서" 세상에도 또 사람 중에도 이면성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명암(明暗), 표리(表裏)… "빛"만, "그림자"만이라는 사회도, 사람도 없다. 빛과 그림자가 있고, 세계는 데생(dessin)처럼 처음으로 깊게 입체화된다. 가수 아사카와 마키 (浅川マキ)가 서 있는 것은 그런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곳이다. 외로움이나, 실의(失意)나, 정신의 방황(彷徨)… 확실히 그것은 인생의 "그림자"의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그림자"를 만드는 것도 "빛"이다. 빛이 없는 곳에 그림자는 없다. 아사카와 마키 "거리의 술집에서" (↓ 작사/작곡:아사카와 마키,1973년) "거리의 술집에서" 가사 거리의 술집에서 취한 여자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너가 외로울 때라도 옛날에 너가 사랑했던 여자를 닮아 있어도.. 더보기
아사카와 마키(1) "날이 새면" 아사카와 마키 라는 가수 (浅川マキ, 1942~2010)가 있었다. 그녀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70년 전후의 시기. 아사카와 마키를 "발굴"한 것은 카르멘 마키(Carmen Maki)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극작가의 데라야마 슈지 (寺山修司)였다. 두 사람의 "마키"는 그 때까지 여성가수에게는 없었던 강한 개성이 느껴진 점에서 "소독(消毒)·살균(殺菌)"된 상업주의 음악을 불만하게 생각했던 젊은이들(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카르멘 마키는 데뷔후 하드락, 쟈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의 길을 걸어가는 한편, 아사카와 마키는 재즈 블루스, 빌리 홀리디(Billie Holiday)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가게 된다. 청춘이라는, 조금 잔혹한 계절을 살기 힘들게 느껴 있던 청년들을, 동세대의 카르.. 더보기
아버지들의 전쟁 (추가) Carmen Maki "전쟁은 모른다" 1968년, 내가 대학에 입학한 무렵 "전쟁은 모른다"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잘 흘르고 있었다. "포크 크루세다즈"도 노래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카르멘 마키(Carmen Maki)의 노래 쪽이 좋았다. 작사는 시인, 극작가의 "데라야마 슈지" (寺山修司, 1935-1983). 17세였던 카르멘 마키를 위해 썼다. ↓ Carmen Maki (데뷔했을 무렵) "전쟁은 모른다" (작사:데라야마 슈지, 작곡:카토 히로시) 들판에 피는 꽃의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들판에 피는 꽃을 좋아한다. 모자에 가득 따가면 왠지 눈물이 나오네 전쟁의 시대을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 황야(荒野)에 붉은 석양이 가라앉는다. 전쟁터에서 죽은 슬픈 아버지 난 네 딸이야 20년 후의 이 고향.. 더보기
아버지들의 전쟁...오오카 쇼헤이, 그리고 내 아버지 (9) 정(情)과 이성(理性)과 이번에 오오카 쇼헤이의 작품을 몇 권인가 다시 읽고 생각해 본 것을 여기까지 써 왔다. 또 전쟁을 경험한 오오카 자신의, 오오카의 전우들의, 그리고 내 아버지의 마음속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 전쟁을 그렇게 "마음"'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오오카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공격성이라는 본능에 의해 전쟁이 일어난다는 이론이 나오는 것은, 실제로는 주판을 놓아서 하는 것을, 공격성이라는 개인의 심리 속에 의태적(擬態的)으로 가져와 속이는 일입니다. 결국 군산(軍産)공동체에는, 전쟁이라든지, 공격성이라든지, 언제나 인민을 자극 상태에 두는 것이 이익이니까요. 그것은 그 이익에 합치하고 있는 학자, 이데올로그, 선동자의 이론이군요." ("전쟁") 오오카가 말하는 .. 더보기
아버지들의 전쟁...오오카 쇼헤이, 그리고 내 아버지 (8) 분노와 슬픔과... 오오카 승평은 "레이테 전기(戦記) "를 집필 중인 1967년 3월, "전적 위문단 (戦跡慰問団)"에 합류해 필리핀 레이테 섬, 그리고 자신이 포로가 된 민드로 섬을 방문했다. 저작 "민도로 섬, 다시"는 그 기행을 정리한 것이다. (1969년 간행, 이하 "민도로 섬"이라고 약기) 그 방문보다 약 10년 전, 필리핀 그 외, 남태평양의 섬들을 돌고 유골을 수집하는 배가 출항한 적이 있었다. 오오카는 출발 일주일 전에 그 배가 민도로 섬에도 들르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너무 가파른 것으로 참가하는 것은 할 수가 않고 그 유골수집선 "은하 마루(銀河丸)" 의 출항을 텔레비전 뉴스로 볼 뿐이었다. "부두에서 (배를 배웅하는) 유족이 울고 있었다. 나도 눈물을 흘리고 방으로 돌아와 시 같은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