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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아버지들의 전쟁 (추가) Carmen Maki "전쟁은 모른다"

1968년,  내가 대학에 입학한 무렵  "전쟁은 모른다"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잘 흘르고 있었다.

"포크 크루세다즈"도 노래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카르멘 마키(Carmen Maki)의 노래 쪽이 좋았다.

작사는 시인, 극작가의 "데라야마  슈지" (寺山修司, 1935-1983). 17세였던  카르멘 마키를 위해 썼다.

 

↓ Carmen Maki (데뷔했을 무렵)

 

 

 

"전쟁은 모른다"

(작사:데라야마 슈지,  작곡:카토 히로시)

 

들판에 피는 꽃의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들판에 피는 꽃을 좋아한다.

모자에 가득 따가면

왠지 눈물이 나오네

 

전쟁의 시대을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 황야(荒野)에

붉은 석양이 가라앉는다.

 

전쟁터에서 죽은 슬픈 아버지

난 네 딸이야

20년 후의 이 고향에서

내일 시집에 갈거야

 

겨보세요, 아버지.

조개구름이 나는 하늘 아래

전쟁을 모르고 20살이 되어

시집가서 어머니가 되는 거지

 

 

 

 

노래의  "들판에 피는 꽃의 이름은 모른다”라는 말이 귀에 잘 남았다.

노래 전체 내용에서 보면 이 "들판에 피는 꽃"은 "전쟁으로 죽은 아버지"이며

그 "아버지"와 같이 죽은 "이름도 모르는" 수 많은 "아버지'"들 일 것입니다.

그 죽은 이들이 하나 하나의 " 꽃"가 되어 마치 무명전사의 묘지처럼 들판 일면에 피어 있다.

그런 심상 풍경이 떠올랐다.

 

작사한 테라야마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전쟁으로 여의었다.

어머니는 패전 후 미군기지에서 일하고 테라야마도 어릴 때부터 고생을 거듭했다.

 

이 노래는 당시 17세였던 카르멘 마키를 위해 쓰여졌지만

노래 속의 "나"에는 물론 "데라야마'"자신도 투영되고 있다.

 

카르멘 마키의 이 노래는 그녀가 테라야마 슈지가 주재하는 극단에 재적했을 무렵,

녹음한 것이다(1969년).

노래의 시작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들어 있다. 극작가·데라야마다운 "연출"이다.

 

“조국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조국과 친구와 어느 쪽이 중요하나?  

 나에게는, 아빠의 나라와 엄마의 나라와 두 개 있고

 그 사이에는 넓은 바다가 있어......"

 

카르멘 마키(1951년생)에도 아버지는 없다. 미국인의 아버지는 처자를 남겨 귀국했기 때문이다.

 

노래에서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의 "나'"는 20세가 되어 결혼해 "어머니"가 된다.

전쟁으로 죽어간 아버지들의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 평화=생명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시대는 바로 세계에서 베트남 반전운동이 불타 퍼진 시기였다.

 

그리고 그 때부터 6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이 노래를, 그리고 전쟁으로 죽은 "아버지"들(물론 자국민뿐만아니라)을 잊어버린 일본은,

지금(2023년),  국제공약으로서의 전후 헌법이 맹세한 "평화국가"를 스스로 버리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다시 크게 진로를 바꿨다.

 

70세를 넘어도 카르멘 마키는 지금도 이 노래를 더욱 소중히 노래하고 있는 것같다.

동세대인 나도 이 노래를, 오오카 쇼헤이 작품과 함께 앞으로도 소중하게 해가겠다.

 

 

(↓ "전쟁은 모른다"  2015년 Version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