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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아버지들의 전쟁...오오카 쇼헤이, 그리고 내 아버지 (7) "레이테 전기"

오오카 쇼헤이의 "전쟁터 체험"에 대해서는  "포로기(俘虜記)", "어느 보충병의 싸움"에

자세히 나오고 있다.

 

특히, 양서에 수록돼있는 "잡힐 때까지" (1948년)의 서술에 있는,

패잔(敗残) 일본병을 추적해 오오카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젊은 미군병을

"왜 쏘지 않았는가? "라는 자기 분석의 철저성과,

그 후 자살을 시도하지만 다할 수 없어서 포로가 될 과정에 대한 투철(透徹)한 묘사에는 압도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오오카의 작품은 그러한 문학성 이상으로,

내가 알 수 없었던 "전쟁"이라는 것, 그것은 전쟁이 시작되어 종결할 때까지의 정치 외교 과정이나 군사론(戦史)이 아닌,

일반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살고, 싸우고, 죽어 갔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는

거의 유일한 "교과서"로서였다.

 

내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내가 들을 수 없었던 것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오카는 자신의 것은 물론이지만 같이 전장터에서 절망적인 싸움을 싸웠던 ,

한 사람마다 이름을 가진 병사들을, 그 위대도 우열(愚劣)도, 용기도 겁도, 헌신도 타락도,

그리고 공감도 무관심도 포함해  "인간" 그 자체를 극명히 그렸다.

나는 이런 작품을 그 밖에 모른다.

 

일본으로 귀환 후 자신의  전쟁체험을 쓴 오오카는

다음에 "레이테 전기(戦記)"(1971년, 이하, "전기"로 생략한다) 의 집필 몰두해 간다.

 

 

"전쟁터의 사실은 병사에게는 우연과 같이 작용하지만

그 일부는 쌍방의 참모(参謀)가 세우는 작전과 사령부의 결정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레이테 섬(필리핀)에 있어서의 결단(決断), 작전 , 전투 경과 및 그 결과의 모두를 쓰는 것이,

저자(오오카)의 다음의 야심이 되었다.」

(오오카 쇼헤이 "전기" 후기)

 

일본 육해군이 결전장으로 한 레이테전(1944년 10월~패전시)에서는 파견된 9만명의 일본병 중

생환자(生還者)는 2천명. 생존율 2%의 지옥과 같은 격전지였다.

그 중에는 전사(戦死)가 아니라 병사(病死), 아사(餓死)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군참모들은 도쿄의 안전한 장소에서 무모한 작전을 세우고

전선에 있는 일반 병사들은 보급선(補給線)도 끊어진 채

무기도 식량도 없이 절망적인 싸움을 강요받은 것이다.

 

"레이테 전기"의 집필 동기에 대해서 오오카는 다음과 같이도  쓰고 있다.

 

“(레이테) 해전(海戦)에 대해서 게임으로서 흥미 본위에 쓰여지는 일이 있어도

육전(陸戦)에 대해서는 정리된 전기(戦記)는 거의 쓰여지지 않았다.

혹은 분식(扮飾)된 이야기 밖에 없었다.

…..

손해가 많으면 그만큼 유가족도 많아서 자신의 아버지나 형이나 아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싸워 죽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것이다.

저자(오오카)가 쇼와 28년(1953년)경, 이 책을 쓰는 것을 결심한 것에는

구(旧) 직업군인의 태만과 분식(扮飾)된 이야기에 대한 분개도 분노도 있었다."

 

이번에는 한 병사의 생사(生死)분만 아니라

오오카 자신도 당시 알 수 없었던 레이테전의 전체상을 밝히기 위해

미군 측의 자료도 포함해 방대한 공간전사(公刊戦史), 사적전기(私的戦記)와의 격투가 시작되었다.

또 레이테 전의 생환자를 방문해 인터뷰를 거듭했다.

한 병사의 생사와 그것을 규정하고 있던 전쟁의 역학과의 교차하는 "장소"로 붓을 진행한 것이다.

 

전 병사의 집을 방문해 거기서 전사자의 명부를 보여 주었을 때의 일이다.

 

"요시오카 아키오(吉岡秋雄), 타케우치 토시마사(竹内敏正), 에비하라 히로시(海老原博),

사토 테츠타로(佐藤鉄太郎)의 이름을 거기서 찾아내서 눈물을 흘렸다."

(오오카 쇼헤이 "민도로 섬(*) 다시" 1969년)

 

(*) "민도로 섬"... 필리핀 제도의 하나. 오오카의 소속 부대의 전우들이 많이 죽었던 섬, 또 오오카도 이 섬에서 포로가 되었다.)

 

"요시오카 아키오"는 오오카와 함께 교육 소집(召集)을 받은 동료이고  

출정(出征)이 정해졌을 때, 면회에 가족을 부르지 않는 오오카에게

"부인에게 연락하라"라고 충언한 사람이다.

 

"이름을 본 것만으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저것(전쟁터)은 어쨌든 힘든 경험이었다.

생사의 경계에 직면하고 있었기 위해서 모두 인간의 속을 드러낸 것 같은 생활 방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그 녀석은 그 때 그런 웃는 방법을 했다든가, 이런 것을 말했다든가,

일상적인 생활의 세목의 기억이 남아 있어, 그것을 떠올리면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

생각나는 것만으로 마치 실재(実在)하고 있는 것처럼 손을 써 오는다.

죽은 자가 언제까지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살아 있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민도로 섬 다시")

 

전쟁의 전체 구조를 해명하려고 하는 오오카의 열정을 지지하고 있던 근본에는, 

역시 고락을 함께 한 전우들에 대한 깊은 생각이 있었다.

 

내 아버지도 전우회(戦友会) 같은 작은 모임에 출석하는 것도  있었던 것같다.

거기서 아버지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생각했는가?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전날 "어째서 아빠들은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어? " 라고 말하는 거야."

한숨을 쉬으면서 그런 이야기도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는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3개월전 경에 사망했을 때 누구에게 어떻게 알려줄까라는

연락처 리스트를 나는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들을 걱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작은 수첩만은 수중에 있다.

갖추어진 문자로 "이상시의 연락처"라고 쓰여져 있다.

그리고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어 달라고 하는 사람으로서는, 회사 관계자가 아니라,

대학 시대의 럭비 동료와, 전우회의 동료의 2명이 지명되고 있었다.

 

 

내가 "레이테 전기"를 처음 읽은 것은 30세를 넘어섰을 무렵이다.

통근,퇴근의 길에  기차 안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레이테전기"는 문고책으로 상・중・하의 3권.

여러 곳에 페이지의 가장자리를 접고 있다.

예를 들면 "에필로그"의 다음과 같은 일절.

 

“일본의 구군대는 병사를 소나 말 (牛馬)처럼 혹사했다.

본토 결전에서는 2천만명이 희생되면 미국은 전쟁을 그만두을 것이라고 계산됐다.

필리핀 전투가 이러한 구타와 정신봉과 완전 소모지구(完全消耗持久, "철저 항전"="옥쇄(玉砕)" 강요)의

방침 아래에서 싸워진 것은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전선 이탈자, 자살자가 나온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이 노예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군이 강제하는 충성(忠誠)과는 다른 곳에 싸우는 이유를 발견하고 잘 싸운 병사를 나 존경한다. "

 

나는 전철 안에서 충격을 받았다.

오오카는 죽어간 전우들을 "개죽음을 당한다"고 보는 것에서도,

또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에 모시는 "영령(英霊)"으로 보는 것에서도 동시에 구출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장편 "레이테 전기"의 "에필로그"는 다음과 같이 끝맺어져 있다.

 

“총괄해 보면 역사적인 레이테 섬의 싸움의 결과, 가장 가혹한 상황에 직면한 것은

레이테 섬에 사는 필리핀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레이테 섬의 전투의 역사는 건망증(健忘症)의 일본 국민에게 타인의 땅에서 돈을 벌려고 할 때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피해를 그 땅에 주을까도 보여준다.

그 피해가 결국 자기자신에 되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은 자의 증언은 다면적이다. 레이테 섬의 땅은 그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자에게는

들리는 목소리로 지금도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과 미군이 격돌한 "레이테 전"의 전체상을 밝힌 "레이테 전기"를 맺는 데 있어서

오오카는, 필리핀을 "일미 결전"의 단순한 "무대"로서가 아니라,

그 당사자=주체 로 볼 필요가 있다는 시점을 제시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실제, 필리핀인의 항일 게릴라 부대도 일본군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오오카의 시점은 한층 더 조선의 땅, 대만의 땅, 중국 대륙의 땅이

계속 말하고 있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건망증의 일본 국민" 에게 지금도 환기(喚起)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이 연재 기사는 앞으로 두 번 정도로 끝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