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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아버지들의 전쟁...오오카 쇼헤이, 그리고 내 아버지 (2) 소집(召集) 때까지

이번에는 오오카 쇼헤이 "어느 보충병 (補充兵)의 싸움"에 수록되고 있는 "출정"을 소개하고 싶다.

"출정" (出征)… "입대하고 전쟁터에 가는 것"(일본어 사전 「大辞泉」)

"출정"의 "정 (征)"은 "정복한다"의 "정"이기 때문에 "출정"이란 자의적(字義的)으로는, "전쟁터에 간다"라고 하는 중립적인 의미보다는, "적을 토벌하러 간다"라는, 자기(국가)를 정의(正義)로 간주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일것이다..

그러나 많은 일반 병사의 의식에서는 "출정"은 역시  "大辞泉" 사전이 설명하는 것처럼 "전쟁터에 가는 것"라는 의미였고,  또 "죽음에 다가가는 것" 을 의미했을 것이다.

오오카 쇼헤이의  "소집" 때 까지의 길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29년 4월... 교토 제국대학 문학부 입학. 프랑스 문학을 배우다. 스탕달 (Stendhal) 에 경도(傾倒) 했다.

도쿄의 세이조(成城)고등학교 때 고바야시 히데오 (小林秀雄,문예평논가) , 나카하라 튜우야 (中原中也, 시인)와 교유가 있었는데 나카하라가 오오카를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그것을 귀찮게 생각한 오오카는 도쿄에서 교토에 도망쳤다고 

한다. (오오카 쇼헤이· 하니야 유타카  "두 개의 동시대사 ".2009년,  이하 "동시대사(同時代史)").

1938년 10월..." 제국 산소" 라는 회사 (고베, 프랑스 자본) 에 입사. 번역 업무를 담당한다.
 
오오카  "어쨌든 세상이 바뀌어 온다 (1937년 7월, 일중 전쟁).  스탠다르를 연구해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회사원이 되어 제국산소에 들어갔어. 프랑스 자본 회사이고 월급은 120엔 받았다. "("동시대사")

"제국 산소"는 철판을 절단하는 자재가 되는 산업용 가스(액체산소) 등을 만드는 회사였다. 항구 도시, 고베에는 큰 조선소가 지금도 몇게 있다. 그 곳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1939년 10월... 오오카는 "제국 산소"에서 만났던 여성과 결혼한다 (직장 결혼) . 식은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 이하, "동시대사"에서 인용한다.)


하니야:   
"어떻게 사귀어달라고 매달렸는가? " 

오오카 :
" 돌아가기에 다방에 가자고 권하면 좋고 지금과 달라지지 않아요".

하니야:
"데이트는 꽤 좋은 곳이 있는 고베의 어디로 갔어?」

오오카:  
"이쿠타 (生田, 번화가)와 카자미도리 (風見鶏, 지붕에 weathercock가 설치된 서양인 주거가 많이 있는 키타노 지구) 방면으로 갔어."


그런데 "제국 산소" 본사가 입주하고 있던 " National Gity Bank Of NewYork (현 City Bank) 고베 지점'" 빌딩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  당시 1층이 은행, 2층이 독일계 기업, 3층이 제국산소 사무소였다고 한다.

 

사진 (↑) 정면이  구 " National Gity Bank " 빌딩.
오른쪽 뒤에 보이는 하얀 큰 건물은 다이마루 백화점(大丸百貨店) 고베점.
볼리즈(William Merrell Vories, 일본국적을 취득한 미국인) 건축 사무소의 설계라는 것이다. 1929년에 준공했다.
시티뱅크도 만주사변(1931년) 전의 시기였고 아직도 일미 전쟁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1941년 12월 8일 일미 개전.

하니야:

"그 때 (対米英 개전)을 여러 사람이 생각나며 쓰고 있는 문장을 읽으보니 
마음이 매우 후련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많는데…

오오카 :
"나는 전혀 후련하지 않았다. 이제 이것으로 정말 안 된다고 생각했어. 군대로 끌려  
죽을 수밖에 없다고 체념이 앞섰네요.
 … 후련했다든가 말하는 자는 문장을 쓰고 있는 녀석(직업작가)만이고 점심시간에 모토마치도리(元町通, 상가)에서 (개전을 전하는 )라디오를 듣고 있으니  모두는 마음속이 얼굴에 나와  오싹해신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1944년 3월... 본적지를 도쿄에 남기고 있던 오오카는 도쿄에서 교육 소집을 받아 코너에 연대(近衛連隊)에 입대한다.

오오카의 출정(出征)에 대해서는 후에 접하고 싶다.


그런데 앞서 말한 '' National Gity Bank"빌딩은 실은 내 아버지와도 연관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전년 (1999년)  고베 시가지의 해안쪽에 있는 요리점에 같이 가본 적이 있다.
아버지의 생일였는가?

그 돌아가는 길, 모토마치 역쪽으로 걸어 다이마루 백화전 근처에 왔을 때 교차로를 건너면서 아버지가 갑자기 이렇게 하셨다.

"복원(復員)해 온 직후 저 빌딩에서 일하고 있었던 적이 있어."

패전 후 아버지는 불탄 자리에 남아있던 저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유명한 Fashion Brand 점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가게)이 입주하고 있는 빌딩을 보면서 조금 재미있는 기분이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오오카 쇼헤이와의  "작은 접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