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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랑

Deep South 여행 (1) King 목사

Little Tokyo에서의 생활도 2년 가까이 되었다. 내 체류 허가 기한은 오래전에 지나고 있었다. 해외생활에도 익숙해지면  타성에 따르기 쉬운 나날도많았다. 나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시기에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은행 계좌에는 천 달러가 모았다. 멕시코인 E씨로부터 몇번이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멕시코를 돌고 나서 일본에 돌아갈까?
그러나, 여기 Los Angeles 와 San Francisco 이외는, 합주국의 아무 곳곳도 보고 있지 않았다. 우선은 미국을 조금 여행하고 나서, 멕시코에 가자고 생각했다.

어디가 좋울까?
곧 떠오른 목적지는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른바 Deep South다 ( 붉은 색 부분 ↓). 그 지역은 학생 시절부터 친숙해진 Blues의 뿌리인 것에 더해, Atlanta (Georgia 주)에는 공민권 운동의 리더, King 목사를 기념하는 시설이 있다.


그런 계획을 친구인 일계 3세의 K군에게 말하자, Atlanta에 있는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K군은, 어느 아시아계 청년 정치 그룹의 멤버로, 아는 사람이 Atlanta에 있었다..
갈 때는  비행기, 올 때는 대륙 횡단 버스(Greyhound Bus)를 이용하기로 했다.

1979년 1월, LA 공항을 자정에 나온 비행기는 이른 아침에 Atlanta에 도착했다. downtown에가서  시간을 때우고 오후에 K군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맞이하러 와줬다.그는 중국계의 젊은이이고 , W라고 한다. W군에게 K군으로부터의 "소개장"을 건네주고,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갔다.

앞서 쓴 것처럼 킹 목사의 '묘묘'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에게 ' Luther King Jr.Center'에 가고 싶다고 말하니,그는 "내일은 일이므로 안내할 수 없지만 버스로 갈 수 있어요. 근데 명후일 Mississippi에서 Rally(집회)가 있으니까 좋으면 함께 가지 않을까" 라고 했다. 1주일 전,  Mississippi의 어느 도시(이름은 잊었다)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청년이 경찰로부터 부당한 폭행을 받고, 그것에 항의하는 집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 공민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수도 Washington을 향했을 때의 "추체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꼭 가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그가 말해준 대로 버스를 타고 King 목사의 기념 시설에 나갔다. 현재는, King 목사의 생가, 다니고 있던 교회(아버지가 목사였다), 그리고 묘석이 있는 King Center, 그리고 공민권 운동을 학습할 수 있는 Visitor Center 등이, "Martin Luther King Jr. National Historic Site” ( 국립역사지구) 로서 정비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King Center라고 불리는 곳은 당시와 같았고, 물이 담긴 큰 수영장 한가운데에 King 목사의 관을 본뜬 묘석이 있었다. 

King Center의 현재 영상 (↓) 을 보면 2006년에 돌아가신  Coretta 부인의 묘석이 같이 줄지어 있는 것 같다. King 목사가 암살당했던 것은, 1968년 4월 4일, 막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였기 때문에, "암살"의 뉴스는 놀라움과 함께 잘 기억하고 있다. 39세의 죽음이었다.
그때부터 약 10년후 드디어 나는 King목사의 무덤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