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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랑

"나성에 가면" (1) Little Tokyo

지금을 거슬러 올라가서, 40년이상 전의 일(1977~79년경), 나는 Los Angeles  (이하, LA) 에서 살고 있었다. 27세부터 29세에 걸치는  무렵이었더.  처음의 해외 여행이자 또 처음의 해외 생활이었다.  LA행 비행기가 처음 타는 비행기이기도 했다.

 

휴학,전학과(転学科)을 거처  1975년에 (25세의 때) 대학을 졸업얬다. 당시 국립대학의 수업료는 한달 1000엔였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그럭저럭 해 나갈 수가 있었다. 졸업한 후 근무하고 있던 작은 광고 프로덕션 회사에서 약간의 퇴직금을 받고 그것을 밑천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학생운동의 패배이후 쭉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라고 정신의 방랑을 되풀이해왔다. 그 연장선 위에 미국행이 있었다.

 

고베의 미국 영사관에서 관광 비자의 발급을 받고, 편도 티켓으로 갔다.

LA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관광비자와 편도 티켓――미국에서 일하는 것은 누가 봐도 뻔했다.

입국심사로 의심받았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취조실(取調室)로 연행되었다. 취조실 앞에는 선객(先客)이 혼자 앉아있었다. 좀 말을 나누었다. 홍콩에서 온 청년이었다. 내가 먼저 불렀다. 어쩌면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미소 짓고 “Good luck”라고 말을 걸어 주었다. 다정한 청년이였다. 그 말의 울림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입국할 수 있었는데 과연 그는 어땠어?

 

취조 담당관에게 처음 말하는 영어로 체류허가 기간을 관광비자의 유효기간 3개월째 한잔 갖고 싶다고 열심히 부탁했지만, 결국 30일의 체류 밖에 허가되지 없었다.

그러나 관광에 온 것이 아니다. 어쨌든 입국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부터 바로 일자리 찾기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자격외 활동, 즉 '불법노동'이다).

 

LA 다운타운(down town)의 거의 중심부에 리틀토쿄(Little Tokyo, 이하,LT)라고 불리는 지구가 있다. 이름대로 20세기 초부터 일본에서 이민해 온 일본인들, 그리고 그 차세대가 아시아계 이민 배척(황황론,黄禍論)에 맞서 상호부조의 장으로 형성되었던  민족 커뮤니티이다.

 

↓  Little Tokyo ...LT의 한 그획은 역사적 건조물 거리러서 보존되고 있다. 오른쪽의 건물은 노동자용 호텔. 나도 

이와 같은 호텔(하숙)에서 살고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흰색 탑은 LA cityhall.

 

 

제2차 대전 때 미국 서해안의 일계인(日系人)들은  '적성국인(敵性国人)'이라고 간주되어 강제수용소로 쫓겨났기 때문에 번영하고 있던 LT는 벌거벗은 껍질이 되어 전후 그 규모는 축소했다. 또 그 후, 돈이 있는 일계인들은 교외로 옮겨갔던 것도 있어, 내가 살았던 무렵(1970년대 후반)에는 일계의 노인과 아시아계·멕시코계·아프리카계 minority 등, 주로 저소득자·단신자가 사는 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 일각에 있는 호텔이라고는 이름만의 희미한 하숙에 집세 월 60달러(당시는 1달러가 280엔 정도)로  살았다(이 호텔은 도시 재개발로 그 후 철거되었다).

일본 레스토랑에서 kitchen helper 겸 설거지의 일자리를 곧 찾았다.

 

 

↓ "나성에가면"이 나왔던 시절에 나도 "나성"에 있었다니!   그 당시에는 전혀 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