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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고베 (神戸)

브라질 이민

항구도시는 다른 곳에서 오는 사람들과 다른 곳에 가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공간이기도 한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 "고베 이주(移住)center"라고 불리는 시설이 있었다.
고베항에서 남미(南美)에 이민하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약 10일잔 이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고베 이주 Center ( 구 국립 이민수용소)

 

남미 이민은 나라의 정책으로 국내의 과잉인구와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노일(露日)전쟁후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브라질 이민선은 1908년에 고베항에서 출항했다.
그후 남미이민 사업은 1971년까지 계속됬다.
이 시설은 1928년에 “국립 이민수용소”로서 만들어졌다. 서양인 무역상이 많이 살고 있던 “키타노”지구의 서쪽에 있다. 외국에서 오고 재산을 쌓았던 사람들과 일본에서 살아가기가 힘들러서 외국에 가는 사람들... 
남미에 이민하는 사람들은 바로 가까이에 보이는 서양식 큰 건물을 보면서 뭘 생각했을까? 

 고베항 메리캔공원에 브라질이민의 기념상이 있다. 그 대좌에는 "희망의 출항"라고 써있다. 공원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많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기념상에 눈길을 멈추는 사람은 거의 없다.(↓)

 

초등생였던 나는  "이민"라는 것도  또 "왜 이민하느냐?"라는 것도 잘 몰랐다.
그들이 center에서 포르투갈어를 공부하거나 예방 접종을 받거나 하고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다만 잘 기억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이주center의 아이들은 거기에 운동장이나 체육관이  없어서 근처에 있는 우리 학교에 자주 놀러 왔다. 그들은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 놀고 있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border가 있었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는 용기가 없었다.
먼 곳에 떠나가는 또래의 아이들에게 뭘 말하면 좋을까 "우리"는 잘 몰랐다.
어느 날, center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가 "어제 이민선이 출항했다"라고 했다.
잠깐 누구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여행이 그냥 "해외여행"아니는 것은  우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 이민선의 출항 광경  (고베항)

 

그때부터  약15년후 나는 미국 Los Angeles의 일본요리점에서 브라질에서 일본에 돌아가는 동년배의 젊은이(일계브라질인) 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토시 창" (애칭 としちゃん) 라고 불린 그는 일본말도 잘 했다.

어느 날 "부모들이 브라질에 남아있는데 나는 일본에 가서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다"라고 했다.
브라질에서는 불경기가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었다.
그에게 “혹시 고베이주center의 근처의 초등하교에 놀어간 적이 있나? ”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 말은 삼켰다.

1990년대 초부터 일계브라질인(Japanese Brazilian)이 돈벌이하러 일본에 가는다는"역전현상"이 시작되었다.
노동력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일본정부는 일계브라질인이 무조건 입국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한 것도 그 "역전현상"을 가속시켰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일계브라질인은 약 20만인이라고 한다.
자동차산업,전자산업등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그들은 경기가 나빠지면 먼저 해고당하는 비정규노동자라는 경우가 많다.

불경기가 계속하는 현재, 실업문제,교육문제(학교에 못 가는 아이가 늘고 있다)등 사태는 심각한다.
매립지에 있는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브라질인 노동자들을 근처의 역에서 볼 때마다  Los Angeles에서 헤어진  "토시 창"이 생각난다.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시 브라질으로 돌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