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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고베 (神戸)

항만노동자들 (沖仲士)

항구도시 고베의 관광 안내의 catch phrase에 “이국(異国) 정서가 넘치는 국제도시”라는 것이 있다.

서양관이 남아있는 “기타노”지구를 산책하고 “난킨마치”(China town)에서 중화요리을 먹은 후, 항구에 접한 “메리켄파크”에 나선다. 그것이 고베 관광의 “model course”일 것이다.

고베에 사는 사람 가운데도 그러한 “이국 정서”가 감도는 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막연히 그 정서에 취한 것만이 아닌가?  그들의 언동을 접하면, "세계에 열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나도 그러한 사람인데  나는 또  그러한 예정조화적인 세계가 흔들리고 그 균열으로 더 풍요로운 세계가 보이는 것을 몇번이나 경험했다.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세계(시야) 의 좁음을 알는 것이었다.

 

고베로 이사하여 “오키나카시(沖仲士)”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처음 알았다.

“오키나카시”란 배의 하역작업을 하는 항만노동자를 말한다.

 

근대의 개항기부터 고베나 요코하마등의 무역항에는 일용직 노동자가 일을 찾아 많이 모여 그들에게 일을 소개하는 알선업이나 노동주택이 늘어나고, 또 노동자를 공급하는(착취하는) 폭력단의 온상이 되었다. 일본의 패전 후, 노동기준법 개정등이 시행돼서 노동환경은 개선되었을 것인데, 1960년대에 들어서도 오래된 노동관행이 아직 남아있었을 것이다.

 

아래 사진(1) 의 부두 사이에  "하시케 艀" (하물을 운반하는 작은 배,거룻배?) 가 많이 보인다.

Kobe Port Tower가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1960년대 중반 무렵의 사진이라고 생각된다.

↓ 사진(1)

 

"하시케"는 부두나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배에 싣고 있는 하물을 옮기고 운반하는 하역배이고 "하시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오키나카시 (沖仲仕, longshoreman)" 라고 부르고 있었다.

 

↓ 외국선과 "하시케"

 

 

우리 집 바로 맞은편에도 "오키나카시"(항만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던  숙사가 있었다. 싸움도 자주 있어고 큰 소리가 들려온 것도 있었다. 

그들은 겉보기는 좀 무서워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보니 “오서 와라”라고 말을 걸어주는 상냥한 아저씨도 있었다.

1970년대에 하역의 컨테이너화 (기계화)가 행해져서 "하시케"도, "오키나카시"도, 고베항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 고베관광의 대표적인 장소의 하나가 된 “메리켄파크”는 바로 위의 사진(1)에 보이는 "하시케"가 많이 정박하고 있던 해면을 매립해서 조성했던 것이다.

 

 

그 공원에 서서 눈을 감으면 나에게는 바로 그 장소에서 일하고 항구를 지탱해왔던 항만노동자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다.

 “우리들을 아직도 가억하고 있나? ”라고..

 

바다는 메울 수 있지만, 역사는 지우질 수가 없다.

 

 

키무라 아쓰키(木村充揮)  "Che sarà " (↓)

 

바다를 보고 있으면 너가 생각난다.
뒤돌아보는 그 미소, 이 가슴에 퍼진다
즐겁고 즐거운 날들을, 괴롭고 애절한 날들을
너와 함께 살던 날들을, 잊을 수 없는 날들을
Che sarà .....
오늘의 하루를, 비오는 날도 바람의 날도
Che sarà .....

꿈 속에 오가는, 오늘도 여러 사람들이
싸움없이 살 수 있도록, 함께 살 수 있도록
Che sarà .....

너의 살아가는 길을, 비 속, 바람 속
Che sarà .....

Che sarà .....
순환하는 계절 속을, 앞을 향해 걸어 가자
Che sara.....

Che sarà .....
오늘의 하루를, 서로 통하고 서로 나누고 서로 사랑하고
Che sar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