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와 고베 (神戸)

이문화 (異文化) 와의 만남 (1) 関帝廟 (관제묘)

누구라도 어느 도시에 오랫동안 살고 있으면 그 도시에게서 모르는 사이에 어느정도 정신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도시에 살고 동시에 도시도 사람속에 살게 된다

내가 자란 도시 “고베” 와 나의 관계도 그러한 것이였다.
가네다씨나 야스다군 같은 재일 코리안(Korean)과의 만남도 포함해, 나의“이문화”와의 만남은 항구도시,고베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타자(他者)와 만나는 것은  그것을 계기로소 조금씩 자신을 알고 변혁해가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 집 뒤에 있는 언덕(중국인 묘지터)에서는 그 당시 높은 건물도 없고 고베항이 잘 보였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부두에 가서 외국항로나 국내항로의 배들이 입항하고 또 출항하는 광경을 쭉 보고 있었다.  먼 외국을 상상하기도 했다.

 

거리를 걸어가면  외국인들을 흔히 만났다.
외국항로의 선원들,
터번(turban)을 머리에 감는 인도사람들,
Canadian Academy등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서양의 아이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보면 나도 또한 "이방인"임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통학노에는 "中華同文学校”(중화동문학교)가 있었다.
재일 중국인 자제들(대륙과 대만을 포함) 이 그 곳에서 공부하고 있었다.(지금도 그대로 있다.)

 

"춘절"( 春節, 설날) 에는 우리집 근처에 있는 関帝廟(관제묘 ↓) 에 중국인들이 많이 참배하고 爆竹(폭죽)을 터뜨렸다. 악귀를 쫓는 의미가 있다고 알았다. 조용히 정월을 맞이하는 일본 문화와의 차이를 알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 고베, 関帝廟

 

 

↓ 요코하마  関帝廟, 춘절

 

 

 

춘절의 날에는 우리 아이들은 関帝廟에 중국인들 사이에 끼여서  폭죽의 "불발탄"을 주우러 갔다.
중국인 묘지터 (들판)에 가지고 와서  다시 그것을 폭발시키고  놀았다.  그 놀이는 좀 "위험한 놀이"였는데 즐거웠다.

아이들의 작은 생활권에도 위화감도 없고 "이문화"의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