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노래들

"요이토마케의 노래"

최근 꽤 오래된 노래이지만 요이토마케 노래(마루야마 아키히로=미와 아키히로, 1965년)나,

산야 블루스(오카바야시 노부야스, 1968년)를 다시 듣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대학시절 (1970년 전후)에 잘 듣는 노래다.

 

전자는, 토목 공사에 종사하고 있던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의 추모,

후자는, 용직 노동자의 거리 (山谷)(도쿄)에서 생활하고 있우리들의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

 

최근의 노래를 듣는 것은 거의 없지만,

위와 같은 땀투성이가 되어 일하사람들을 노래하는 노래는 거의 없는 것이 아닌가.

 

↓  마루야마 아키히로  1965년경?

 

 

요이트마케의 노래(↓)

요이트마케(*)의 영상이 나와 있었으므로, 아래의 동영상을 선택했다. 노래도 잘한다.

 

(*) 요이트마케 건축 현장 등에서의 땅 굳힌 때, 많은 무거운 망치를 활차로 올려 놓는 것. 

또, 그 작업을 실시하는 사람. 작업을 할 때의 목소리. (大辞泉)

 

 

 

 

 

한국어 가사https://blog.naver.com/masakiiaiba/20179882210

                      감사합니다,

 

ヨイトマケの唄 요이토마케 노래)가사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엔야 코라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엔야 코라

 다시 한 번 더 엔야 코라"

 

(1)

지금도 들려오네 달구질 노래

지금도 들려와 그 자장가

 

공사 현장의 점심 후 휴식시간

담배를 피우며 눈을 감으면

들려오네 그 노래가

일하는 막일꾼의 그 노래가

가난한 막일꾼의 그 노래가

 

(2) 

어릴 적에 초등학교에서

달구질 하는 일꾼의 자식

더러운 애라고

괴롭힘 당하고 놀림을 받아

분한 눈물로 지새면서

울며 돌아오는 길에서

어머니가 일하시는 모습을 봤지

어머니가 일하시는 모습을 봤어

 

(3)

머리에 수건 쓰신 채 진흙투성이가 되어

햇볕에 타며 땀을 흘리시고

남자들에 섞여 밧줄을 당겨

하늘을 향해 목청을 높여

있는 힘껏 노래했지

어머니가 일하시는 모습을 봤지

어머니가 일하시는 모습을 봤어

 

 

(4)

위로받자 안기자고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지만

어머니의 모습 본 순간

울던 눈물도 다 잊어버리고

돌아갔지 학교로

공부할 거야 라고 말하면서

공부할 거야 라고 말하며

 

(5)

그때부터 몇 년 지난 일이지

고등학교도 나오고 대학도 나왔어

지금은 기계 세상에서

덕분에 나는 엔지니어

고생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엄마 봐 주세요 이 모습을

엄마 봐 주세요 이 모습

 

(6) 

몇 번인가 나도 비뚤어질 뻔했지만

온전치 못한 길은 밟지 않게 됐지

어떤 멋진 노래보다도

어떤 멋진 소리보다도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 준

어머니의 노래야말로 세계 제일

어머니의 노래야말로 세계 제일이야

 

지금도 들려오네 달구질 노래

지금도 들려오는 그 자장가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엔야 코라

 아이를 위해서라면 엔야 코라

 다시 한 번 더 엔야 코라"

 

 

 

나는, 손목시계는 CASIO의 1000엔 (9000원?) 시계로 만족하고 .  

그래서 최근, 롤렉스 (ROLEX)의 시계가 수백만, 수천만엔도 한다고 알 깜짝 놀랐다.

그 이상으로 그 비싼 시계를 고 싶어서, 일부러 렌탈 가게에 돈을 지불해

빌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층 더 놀랐다.

 

땅에 발을 붙이지 않 겉치레만 좋아하는 사람은 어쩐지 애처롭다.

(←이 없는 노인 나의 옥생각?)

 

그런데 작가 나카노 코우 (中野孝次 1925-2004)는

일본의 왕조 문학을 대표하는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를 읽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아마 왕조 여류 문학의 그 궁정적으로 세련된 미의식과 그 폐쇄성이

 나의 체질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족사회와 도시사회만이 유일한 현실인 듯한 시야의 좁음이 참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겐지 이야기 좌절자인 저는 이 나카노의 견해에 굉장히 공감할 수 있다.

나카노가 귀족 사회와 도시 사회만이 유일한 현실인 것 같은 시야의 좁음이라고 쓴 것은,

옛날의 귀족들에 한한 이야기 아니다.

현대 일본의 정·재·관(政・財・官界)귀족들, 그 추종자들도,

"시야의 좁음에 있어서는 동등하거나 그 이하일 것이다.

빈곤층의 증대를 보고도 모른 체하다.

 

그런 생각도 있어서, 요이트마케의 노래 블루스

한층 더 듣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으면서, 학생 시절(1970년경),

목조 가옥의 해체 작업(당시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았다.100% 육체 노동)나,

무덤의 건립 작업의 아르바이트를 한 나날이 생각해졌다 . 

우두머리는 모두 학생 아르바이트에 친절했다.

작업에서의 약간의 꼬임은 너그러이 보아주고, 커버도 해 주었다.

일이 끝나고 먼지에 묻힌 몸을 목욕탕에서 씻어낸 뒤,

모두 모여 마시는 맥주는 정말 마셨다!

그리고, 편한 학생의 분이면서, 글라스를 손에 요이트마케의 노래 블루스를 흥얼거리니 

가사의 하나하나가, 마음에 한층 더 넘쳐 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