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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발자취

나의 "박치기" (3) 생명의 빛


보통 나는 아내가 재일한국인임을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숨기려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재일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하면 틀에 박힌  "눈"으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결혼할 때까지 힘들었지않아? "라고 "동정"해주는 사람이 있다. 물론 고생은 있었는데 일본인끼리, 한국인끼리의 결혼에서도 부부는 고생을 함께 하는 것일 것이다. 또 "너들의 결혼은 한일 우호로 이어질 것야"라는 선의의 "격려"를 받기도 있지만 우리는 "국가"나 "민족"을 짊어지고 결혼한 것도 아니다.
물론 왜 왜 그녀의 부모님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왔는지를 생각할 때 그 배경의 모든 것을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거기에 "역사"가 개재하고 있는 것도 또 명백한 것이다.

결혼을 둘러싼 문제를 비롯해서 나는 이 "개인" 과  "민족·국가"(역사) 사이에서 머리를 곳곳에 부딪쳐 왔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나의 사고(思考)의 행보를 조금 넓은 장소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버지는 "일본인", 어머니는 "(재일)한국인"라는  우리 아이는 "일본인"'일까, 아니면 "한국인"일까?  물론 한쪽으로 나누어 버릴 수 없는 존재다. 생명은 하나니까… 
어린 아이들의 잠자는 얼굴을 보면서 문득 이렇게 생각했을 때 머리 속의 안개가 조금씩 개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생명이 나와 아내에게서 그리고 우리 부모나  조상들에게서 받은  것이라면 그것은  아이 "개인"에만 귀속한는 것이라도 아니다.

모든 것을 "개인"에도, 또 "민족" 이나 "국가"에도 해소할 수 없는 생명… 이런 존재를 상상하는 "장소"에 서서 생각해보면 무엇이 보이기 시작하는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나 민족 따위 상관없다"라는 cosmopolitanism도 아니고, 또  자기를 "국가나 민족"과 동일화해 버리는 nationalism도 아닌, 명명할 수 없는 미지의  "장소"로 향해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디고 싶다고 바랐다.

후년에 본 영화 "박치기"도 그런 "장소"를 향해 달리고 있는 작품인 것 같이 생각했다.

 

(끝)

 

 

↑ 영화 "박치기"의 한 장면. 

민족이나 역사의 "벽"에 고민하는 주인공 "코우스케"(왼쪽)에게 킹 목사의 연설의 한 절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를 인용하면서 "지면 안돼"라고 격려하는 "사카자키(坂崎)" (오른 쪽, 배우:오다기리 죠).

이 메시지는 코우스케의 여자 친구, "경자"에게의 격려이기도 할 것이다.

 

 

↓ 영화 "박치기"의 ending...credit 의 "협력자"명에 미야코 하루미씨의 이름이 보인다. 그렇구나 !

    모두의 "내일"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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