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의 전쟁...오오카 쇼헤이, 그리고 내 아버지 (7) "레이테 전기"
오오카 쇼헤이의 "전쟁터 체험"에 대해서는 "포로기(俘虜記)", "어느 보충병의 싸움"에 자세히 나오고 있다. 특히, 양서에 수록돼있는 "잡힐 때까지" (1948년)의 서술에 있는, 패잔(敗残) 일본병을 추적해 오오카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젊은 미군병을 "왜 쏘지 않았는가? "라는 자기 분석의 철저성과, 그 후 자살을 시도하지만 다할 수 없어서 포로가 될 과정에 대한 투철(透徹)한 묘사에는 압도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오오카의 작품은 그러한 문학성 이상으로, 내가 알 수 없었던 "전쟁"이라는 것, 그것은 전쟁이 시작되어 종결할 때까지의 정치 외교 과정이나 군사론(戦史)이 아닌, 일반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살고, 싸우고, 죽어 갔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는 거의 유일한 "교과서"로서였다. 내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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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전쟁...오오카 쇼헤이, 그리고 내 아버지(5) 1937년 “남경 함락(南京陥落) ”
여기까지 작가 오오카 쇼헤이가 자신의 입영, 출정(出征)등 의 군대체험을 둘러싸고 말해 왔다. 그런데 당시 동세대의 1%대에 불과했던 고등교육을 받은 대학생과 대졸자들은 일본사회가 군국주의에 점점 경사해 가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우선 일본 역사년표를 보면서 오오카 쇼헤이, 그리고 내 아버지의 "발자국"을 그 시대에 겹쳐 보면… 1909년 3월, 오오카 ,출생 1910년 5월, 대역 (大逆)사건...천황암살을 계획했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들을 체포, 사형을 집행한 원죄(冤罪)사건. 1910년 8월, 한국병합 (식민지 지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15년 8월, 내 아버지, 출생 1925년 5월, 치안유지법 성립 1925년 12월, 교토학련 (京都学連) 사건…교토대, 도시사대(同志社大) 등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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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전쟁...오오카 쇼헤이, 그리고 내 아버지 (3) 교육 소집(召集)
전전의 징병 제도의 대략은, 나 나름의 이해이지만, 다음과 같은 일이 될까. 프랑스 혁명을 통해 근대 국가는 국민 전병제도(皆兵制度)를 정비한다. 일본에서도(패전까지), 남자(국민)가 20세가 되면 징병 검사를 받는 것이 "의무" 였다. (식민지 징병제도의 도입 문제는 지금은 언급하지 않다.) 다만 대학생에게는 징병검사의 유예가 있었기 때문에(대학 진학률 1% 미만의 시대, "특권"였다, 그들은 졸업 후에(23세 경), 검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징병검사에서는 신체적인 장검 (壮健)함이 주된 평가축으로 되어 갑종(甲種), 제1 을종(乙種), 제2 을종(乙種), 병종(丙種), 정종(丁種), 술종(戊種)으로 나뉘었다. 검사의 결과 합격이 된 후 즉시(검사의 다음해 1월) 입영하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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