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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발자취

대학 시절 (3)

1969년 8월...

자민당 정부는 전국으로 번진 "전공투"운동을 억누르기 위한 법률을 국회에서 성립시켰다.
정부는 대학에게 압력을 가해서 대학당국은 경찰력을 도입하여 대학 "정상화(正常化)"를 시도했다.
 그해 가을에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운동은  진압되었다.

1969년 9월...

우리 대학의 "전공투"는 대학당국과의 교섭을 계속해 요구하고 있었는데, 9월에  당국은 대화를 거절한 채로

마침내 경찰기동대를 도입해서 우리 학생들을 구내에서 완전히 쫓아냈다. 

 



어느 밤, 동급생인 K군가 갑자기 나의 하숙을 찾아왔다. 
K군은  “ X파도 대학도 그만두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을 작정이다” 라고 말했다.  K군이 어딘가로 떠날 전날이었다. 그와 함께 술을 마셨다. 내가 “같이 가도 돼? ” 라고 물으면  그는 "너는 너의 길을 걸으면 돼"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사 갈 곳을 알려주지 않고 나도 무리하게 묻지 않았다.
친구가 된 후 그는  나에게 한마디도 억압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 한테서 사람 마다 다르게 있는 “개인성”(個人性)을 먼저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연대하기를 바란다는 정신의 자세를 배웠다.

K군뿐만 아니었다. 운동이 패배한 후 학생들은 대학에 그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떠날까, 자문자답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대학을 그만두고 떠났다. 
많은 사람은 다시 대학에 되돌아왔다. 
운동에 참가하지 않았던  학생들이나 교관들의  차가운 눈이 있었다. 
"제멋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해다가 다시 수업에 되돌아 오는거야?" 비웃는 것 같은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수업에 출석할 수가 없어서 휴학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업에 출석하고 있는 친구들에 대해서 나쁘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의 조롱을 견디면서 그 속에서 단련할 사상(思想)도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들보다 오히려 내가 더 도망하고 있었다. 

어쨌든 대학을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라는 자문을 이전보다 더욱 무겁게 안고 있었을 것이다. 


1970년 3월부터  오사카에서는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연일 전국 각지에서 30만을 넘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러 몰려왔다.
사회는 소수파등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 어떤 노래를  자주 듣고 있었을까?
"슬퍼서 견딜 수가 없어"라고 하는 노래.
 슬플 때에는 밝은 노래보다 슬픈 노래가 더 좋다. 


"슬퍼서 견딜 수가 없어" 가사 


가슴에  사무치는 하늘의 빛남

오늘도 멀리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슬프고  슬퍼서

도저히 견딜 수 가 없고

이 표현할 수없는 마음속을

누구에게 전하면 좋을까

 

나는 The Folk Crusaders의 원곡보다 영화 "박치기" (2005년) 속에서 배우 오다기리죠 (オダギリ・ジョー) 씨가 노래 "슬퍼서 견딜 수가 없어" (↓)  좋아한다. "박치기" 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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